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망디 상륙작전 (문단 편집) === 공수작전 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6px -10px" [[파일:attachment/06-101st-airborne.jpg|width=100%]]}}} || D-day의 서막을 알린 것은 공수부대였다. 6월 6일 새벽에 [[미합중국 육군]] 제82공수사단과 101공수사단, [[영국 육군]] 제6공수사단은 해안포 진지나 교량 등을 점령하기 위해 가장 먼저 노르망디에 강하했는데, 0시 15분에 본대에 착지 지점을 표시할 선도 부대(패스파인더)들이 강하됐고, 뒤이어 새벽 2시에 본대가 강하한다. 폭발물이 든 인형을 매단 낙하산을 대량 투하해 독일군의 주의를 일부 다른 곳으로 돌렸지만 대공포로 인해 피해를 입는다. 또한 이들이 오기 전에 롬멜이 일부 지역을 강을 이용해 [[늪]]이나 [[호수]]로 만들어놓았는데, 비록 이 늪들의 깊이는 대충 무릎 깊이 즉 50~60cm밖에 되지 않았지만 몇십 kg에 달하는 무거운 군장과 강한 바람에 낙하산에 끌려다녀서 상당히 많은 수의 인원이 강하 후 낙하 장비를 풀다가 [[익사]]했다고 한다. 이때 미군 공수부대의 군장은 벨트를 세 개나 풀어야 하는 복잡한 구조 때문에 버튼 하나로 한 번에 장비 해제가 가능한 영국 공수부대보다 사상자가 많았다고 한다.[* 대신 영국 공수부대에겐 보조 낙하산이 지급되지 않아서, 낙하산이 펴지지 않는 불상사가 일어나더라도 살 확률이 있는 미군과는 다르게 낙하산이 안 펴지면 그냥 끝장이었다.] 그리고 당시 노르망디에는 강한 바람과 독일군이 발포해대는 대공포의 저항으로 인해 [[수송기]]가 제대로 된 지역에 병사들을 떨구지 못해 거의 제대로 집결하지 못했다. 물론 대공포화로 추락한 연합군측 수송기도 많았다. 그래서 공수부대원들이 제대로 부대를 정식 편성하지 못하고, 중간에 만나는 장병들끼리 모인 뒤 소부대를 임의 편성해서 임무를 수행한 경우가 많았다. 이 중에는 아예 소속 사단이 다른, 그러니까 101사단 소속 대원과 82사단 대원이 합류해서 소부대를 편성하는 사례나 영국 제2공수사단과 미국 101사단 소속 대원이 합류해서 소부대를 편성하는 사례까지 있었다. 또한 강습용 글라이더[* 수송기 정도 크기에 20~30명 정도가 탑승했다.] 또한 많은 사고를 낳는다. 이 중에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최고위 전사자까지 발생했다. 101사단의 부사단장인 돈 프랫 준장은 글라이더를 타고 강하했는데 지상에서 제때 멈추지 못해 나무 울타리에 충돌했고 이 충격으로 싣고 있던 지프와 충돌해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